마왕 토벌 후, 눈에 띄고 싶지 않아 길드 마스터가 되었습니다 2화. 차가운 우유와 은빛 물병 특제주

외투 소매 틈으로 엿보이는 고귀한 신분의 인간만이 입을 수 있을 옷자락――그걸 보면 그녀의 실제 모습 따위 훤히 볼 수 있지만 외투와 함께 서민의 옷을 조달하지 못 한 것이리라. 여기까지 오는 것만으로도 크게 고생했을 터이다.

 나는 마왕에게 주문지를 넘기는 척 자칭 시녀에게 할 질문 사항을 전했다. 마왕은 모른 척 훑고는 내게 안주를 만들어 주고는 질문을 시작했다.

 “그럼 첫 번째 질문입니다. 마나리나 공주님이 파기를 바라는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폐하께서 왕녀님 모르게 혼약을 정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단 한 번 말을 섞었을 뿐인 남성에게 시집 가는 것은, 설령 의무더라도 탐탁치 않으신 거겠죠.”
 “그렇군요…… 저도 이분이다 정한 분과 재회한 이후로는 되도록 많은 대화를 나누며 상호 이해를 진전시키고 있답니다.”

 무슨 소리야. 그렇게 끼어들고 싶어지는 걸 꾹 참는다. 마왕은 내게 윙크를 하지만 오히려 역효과다.

 “……그건 언제까지고 이야기하고 싶은 상대라 그런 것 아닐까요? 뷩스부르크트 공작은 여성의 외면을 칭찬하는 법은 있어도 내면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죠. 게다가 마나리나 공주님이 아니라 장인어른인 국왕 폐하의 기분만 살피시죠. 그런 분이니 아무리 이야기를 나눠도 마음이 끌릴 리 없어요. 그가 손에 넣어온 다른 여성과 비교하는 걸 악의 없이 하시는 분이시고……”


 왕족과 귀족들은 그건 왕녀의 어리광이다, 하고 말할지도 모른다.
 최고 권력자인 국왕을 늘 의식하며 딸인 왕녀 개인을 보지 않는다――왕녀가 그걸 고통으로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국왕에 대한 불경. 그런 생각을 가진 자가 국왕의 눈에 들어 작위를 높이는 경우도 있다.

 내가 만난 국왕 폐하는 공명정대하다 해도 좋을 사람이었지만, 그런 사람이라도 아양과 ‘충의’를 구분하지 못 하는 일도 있으리라. 나라를 위해서라면 뷩스부르크트 공작과 깊은 인연을 만들어두고 싶어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하지만.


 그의 분방한 여성 관계가 훗날의 혼란을 낳을 것만 같았다. 마나리나 공주가 결혼을 파기하길 바란다면, 뒤탈이 남지 않는 방법으로 해결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길드로서는 의뢰를 받아도 상관 없다는 것이다.

 “공주님의 심정은 알겠습니다. 그럼 현시점에서 가능한지는 제쳐두고, 마나리나 공주님과 그 협력자의 힘을 이용해 결혼을 파기시킬 방법은 존재하나요?”
 “……존재는 합니다.”

 대답하는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방법이 존재하더라도 절대 불가능하다. 그걸 알고 있는 것이겠지.

 “왕족은 다른 자의 요구를 결투로 물릴 수 있어요. 즉 뷩스부르크트 공작과 어전시합을 펼쳐 이길 수 있다면…… 왕녀님은 혼약을 파기할 수 있죠.”


 알베인 왕국의 오랜 풍습. 결투로 바라지 않는 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 그 자유가 모든 국민에게 허용되어 있다.

 결투로 얻은 의사 결정의 자유를 빼앗는 것은 싸움과 번영을 담당하는 알베인의 주신에게 거스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민의 절반이 믿고 있는 알베인 주교를 등지는 것은 나라의 정점에 선 왕족에게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공작도 예외는 아닌지라 그 법에 따라야만 한다. 왕녀의 혼약전 어리광이라고 해석하여 힘으로 찍어누르려 한다면 결투의 구도를 갖추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설령 결투를 하더라도 이길 수는 없다. 그건 자칭 시녀의 곤란한 얼굴을 보면 알 수 있다.

 “뷩스부르크트 공작의 실력은 모험가 강도로 환산하면 전투만으로도 1200 정도는 된다고 하네요. 검의 평가가 800, 마법이 400. 마나리나 공주님은……”

 “……마나리나 공주님의 전투 평가점은 700점 정도에요. 순순한 검술만으로……”

 귀족에게 모험가 강도는 필요 없지만 자신의 실력을 알기 위한 지침으로는 사랑 받기에 길드에서 측정관을 불러 측정하는 사람이 많다. 뷩스부르크트 공작은 불과 2주 전에 측정했으며 1231이라는 숫자를 받았다. 공작이라는 입장까지 더하면 총합적인 모험가 강도는 6764가 된다.


 그래, 귀족의 실력은 모험가의 기준으로는 강도 1만의 A 클래스 모험가도 되지 않는 것이다. 의뢰 대부분이 전투 의뢰이기에 모험가는 주로 실력만으로 평가 받기 마련이었다.

 공작의 권력 또한 임무를 수행하는데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평가를 받는다. 그 수치가 6000점이었다. 종합 수치가 맞지 않는 것은 그가 여성 관계에서 수많은 사람의 원한을 사고 있기 때문이라지만 눈밖에 들고 싶지 않은 측정관은 자세히 가르쳐주지 않았다. 이 정도 파악은 지금의 내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전투 평가점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수치야 고작 100이라도 그 차이가 커서 뒤덮는 건 어렵다. 하물며 500이나 차이가 있는 이상, 수치가 낮은 쪽이 이기려면 파티를 맺을 수밖에 없다.

 검술만으로 전투 평가 700이라는 것은 마나리나 공주가 검에 나름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지만 검만으로도 800인 뷩스부르크트 공작에게는 승산이 거의 없다.


 하지만 그건 마나리나 공주가 아무런 백업도 받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다.

 나는 소리도 없이 영창 준비를 시작했다.
 이미 이 의뢰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건 파악하고 있다. 이제는 실행할 뿐이다.
 결코 자칭 시녀――마나리나 왕녀에게 내가 뭘 했는지 들키지 않도록.

 “점장, 우유 주겠나?”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우유? 조금은 제 말을 신경 써서 몸을 살피게 된 건가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 자칭 시녀.

 나는 주문한 우유를 받아 ‘아무렇지 않게 손을 내민 후’――

 카운터 위에서 밀어 자칭 시녀의 눈앞에서 한 방울도 흘리지 않게 딱 멈춰내 보였다.

 “아가씨, 그건 당신 거야. 내가 쏘는 거니 마시라고.”
 “읏…… 우, 우유는 암구호지…… 그런 의미로 말한 건……”
 “보아하니 아직 음주 연령도 아닌 것 같은데. 같은 카운터에 앉은 인연이라고 생각해.”
 “이, 이런 걸…… 어린애 취급하지 마세요! 불쾌하군요!”

 어린애 취급하지 말라고 화낸다――그 반응은 예상했지만 여러 이유로 지금은 우유가 최적의 선택이다. 한 입이라도 마시게 해야만 한다.

 “손님. 아직 의뢰에 대한 이야기가 남아 있답니다. 실례지만 음료수를 내놓는 걸 잊고 말았군요. 마음에 안 드실지도 모르지만 저 손님분의 호의를 받아주시면 저희 또한 감사하겠습니다.”

 마왕이 그렇게 말하니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자칭 시녀는 얼굴을 붉힌 채 나를 보고는――우유가 든 잔을 손에 들었다.

 “……차갑네요. 사실은 조금 목이 말랐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 해서 죄송해요. 의뢰 이야기를 계속해주시겠어요?”

 그녀가 다시 자리에 앉아 잔을 들고는――우유를 마셨다.
 정말로 목이 말랐던 모양이지만 왕녀의 소양인가 두 모금 밖에 마시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 없다. 이 시점에서 의뢰는 거의 달성한 것이나 다름 없다――내 예상대로 그녀가 ‘마나리나 왕녀 본인’이라면.

 “손님께 알려드립니다. 의뢰 내용에 대해서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제안하는 것은 ‘결투’로 혼약을 파기하는 방법입니다.”
 “그, 그건…… 공주님께서 그 남자에게 이길 방법은……”
 “반드시 이길 수 있도록 저희가 손을 써두겠습니다. 왕녀 각하계서는 아무 걱정 말고 결투 자리에 나가도록 전해주세요.”
 “……정말로 그런 게…… 그 남자에게 독이라도 먹일 생각인가요?”
 “저희 ‘은빛 물병’은 의뢰 진행 과정에서 불화의 씨앗을 결코 남기지 않습니다. 손님께서 비밀을 엄수해주시는 것처럼 저희 또한 정보를 누설하는 일은 없습니다. 왕녀님의 생활에 지장이 생기지는 않을 테니 안심해주세요.”

 카운터에 선지 고작 한 달 밖에 되지 않았건만 마왕의 설명은 내 의지를 완전히 반영해주었다. 완벽하다 해도 좋았다. 고용하고 있는 카운터 아가씨는 한 명 더 있지만, 그녀는 내 육성으로 우수한 모험가가 되었다. 지금은 의뢰로 가게를 비우고 있다.

 “……알겠습니다. 당신을, 그리고 이 ‘은빛 물병’을 믿겠어요. 보수는……”

 그에 관한 건 내가 이미 마왕에게 전해두었다. 자칭 시녀의 본 모습이 왕녀이며 결혼을 거부한다는 걸 알고 생각한 일이다――조금 지쳐버린 코디의 얼굴이 떠오른 것도 있지만.

 귀족이 왕국의 권위를 방패 삼아 기사단을 심부름꾼을 사용한다――코디가 고생하는 이유였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가. 길드에 의뢰하면 개인적으로 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영지의 마물 퇴치 등은 자력으로 해야하 건만 기사단의 힘을 빌리고 있다. 잔챙이에게 광검을 써야 하는 코디도 불쌍하며 귀족의 의뢰가 주는 것은 길드 전체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다. 그 상황을 바꿀 좋은 기회였다.

 “귀족이 기사단에게 고압적인 간섭을 못 하도록 국왕 폐하께 진언해주는 것. 그것이 저희가 제시하는 조건입니다. 귀족 분들이 기사단을 모험가 대신 사용하면 그들도 피폐해지고 왕도 모험가의 일도 줄어드니까요.”
 “……기사단…… 그렇군요. 귀족들은 이따금 나라를 지켜야 할 기사단을 사적으로 이용할 때가 있죠. 그건 공주님도 신경 쓰는 일이시니 바로 대답해주실 겁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니 선금을 내겠어요. 마음이라 생각하고 받아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마나리나 왕녀가 카운터에 놓은 것은 은색 펜던트――알베인 왕가에 전해지는 ‘왕가의 증표’였다.

 나는 그만 그 펜던트를 응시할 뻔했다. 이번 일은 왕족에게 연줄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 보수는 특별히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국보급 아이템이 나와버린 것이다.

 알베인 왕국 내부에 다섯 군데 있는 구시대부터 남아 있는 고대 유적. ‘왕가의 증표’는 그 안에 들어가기 위한 필수품이다. 레어 아이템을 추구하는 모험가라면 침을 질질 흘릴 아이템이었다―― 다 해서 세 개가 있다지만 입수하는 건 좀 더 나중 일일 줄만 알았다.

 고대 유적 내부는 숙련 모험가마저 가로 막는 함정과 마물로 넘쳐나기에 왕국은 관리를 방치하고 있다. 우리 길드에서 조사해도 눈밖에 들 일은 없으리라.

 “괜찮은 건가요? 이걸 저희가 받는 건……”
 “네, 괜찮습니다. 제 인생을 당신들이 바꿔주는 거니까요. 그렇다면 목숨이나 다름 없는 걸 내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 그러면 수지가 맞지 않으니까요.”

 목에서 손이 나올 것만 같은 아이템――하지만.

 그걸 이 자리에서 받기 보다는 결혼 파기가 이뤄진 후, 다시 한 번 왕녀의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었다.

 옆에 있는 주정뱅이라도 좋다. 우유를 사주는 건 이번만으로 충분하다.

 나는 마왕에게 주문을 한다. 지금의 그녀에게 어울리는 건 우유가 아니다.

 인생을 바꿀 일생일대의 싸움을 위한 기운 불어주기다.

 “……이건…… 괜찮은 건가요? 손님?”
 “그래, 상관없어. 방금은 우유 같은 걸 주문해 어린애 취급해서 미안했어.”
 “아, 아뇨. 저야말로 어른스럽지 못 했으니까요.”

 왕녀가 내게 사과하는 사이, 마왕은 내 주문을 따라 밖에 내놓지 않은 재료를 가지러 주방으로 향했다.
 그렇게 블랜드를 마치고 돌아와 왕녀의 앞에 잔을 놓았다.

 “이건……?”
 “저 손님분께서 사시는 겁니다. 도수는 어린 분께 맞춰 약하게 해두었으니 사양 않고 드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잔에 담겨 있는 건 흰색과 복숭아색으로 나뉜 술. 그리고 그 위에는 정렬과 승리를 뜻하는 붉고 작은 꽃잎이 장식되어 있었다. 그 꽃말은 ‘자칭 시녀’에게는 필요 없지만 ‘왕녀’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이 가게에서만 마실 수 있는 특별한 술’입니다. 기린의 젖을 발효시켜 약한 술을 만들고 천도 복숭아라는 과실을 겻들여 국화의 꽃잎을 얹었지요.”

 “……예쁘다…… 이거, 정말 마셔도 되나요……?”

 마왕이 고개를 끄덕이니 왕녀는 술이 들어간 잔에 입술을 얹는다. 그리고 감탄했다는 양 잔을 바라보았다.

 “맛있네요…… 야만적인 사람인가 싶었는데 이런 섬세한 맛의 술도 아시는군요……”

 나는 딱히 반응하지 않고 야만적인 맥주를 들이켰다.

 그녀는 아직 의뢰를 달성하기 위해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른다――그러니 내게 감사할 이유는 없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 가게에서만 마실 수 있는 특별한 술’은 내 생각 이상으로 그녀의 마음을 움직인 모양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왕녀가 내게 다가왔다. 잔을 내민다. 이렇게까지 나온다면 모른 척을 할 수 없었다――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작은 잔을 향해 큰 맥주잔을 들이밀었다.

 “방금 전 우유도 맛있었지만 이 술이 먼저 나왔다면 더 마음이 이끌렸을지도 모르겠네요.”
 “읏…… 아, 아니, 아가씨. 나는 딱히 꼬시려 든 게 아냐. 단순히 같은 카운터에 앉은 인연으로……”
 “네, 알고 있어요. 단지 제가 일방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뿐이니까요…… 주정뱅이씨.”

 줄곧 옆얼굴 밖에 보지 못 한 왕녀의 얼굴. 정면으로 바라보니 그 어떤 말도 색을 바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출처 : 小説を読もう!

원작 : とーわ

번역 : A.A.A(AAA)